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왔습니다.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한 삶 속에서 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탐구하고 그에 따른 생활 방식을 익혀왔죠. 바로 이런 전통적 자연관이 24절기라는 독특한 시간 개념으로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24절기는 1년을 24등분하여 기후 변화와 자연 현상을 담아낸 것입니다. 날짜만으로는 계절을 가늠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복잡한 기후를 고려한 지혜로운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절기마다 농사철의 주요 일과, 농촌의 삶과 의식주 전반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 우리 민족이 자연과 어떻게 소통하며 살아왔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봄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입춘(立春) 때가 되면 대지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봄의 시작인 만큼 선조들은 집에 남은 땔감을 정리하고 농기구를 꼼꼼히 점검했습니다.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의 섭리를 읽어냈습니다.
우수(雨水)에는 봄갈이를 위한 비가 내립니다. 이 시기 우리 조상들은 우물 관리를 철저히 했습니다. 가뭄에 대비해 마을의 공동 수원을 꼼꼼히 점검한 것이죠. 경칩(驚蟄)이 되면 밤낮으로 기온차가 벌어져 벌레들이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밭의 잡초를 제거하며 병충해 예방에 힘썼습니다.
춘분(春分)이 지나면 봄이 깊어지고 만물이 소생합니다. 청명(淸明)이 되어 하늘이 맑아지면 봄꽃들이 만개합니다. 전통사회에서는 이 무렵 고사를 지내고 집안 화전을 내는 등 자연과 친화하며 살아갔습니다.
곡우(穀雨) 무렵에는 보리, 밀 등 곡식들이 움텄다고 전해집니다. 곡식들이 본격적으로 자라나 푸른 들녘을 이루는 계절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 선조들은 곡우의 싱그러운 모습에서 봄의 생명력과 희망을 보았습니다.
여름 절기에는 무더위와 함께 농작물의 생육 상황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입하(立夏) 때가 되면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맘때쯤 모내기에 착수하여 소만(小滿) 이르면 늙은 모가 잘 자라나게 됩니다.
망종(芒種)이면 잡초를 뽑고 벼를 가꾸어야 합니다. 하지(夏至) 땡볕이 내리쬐는 무렵이 되면 모내기를 마무리 짓고 벼의 뿌리를 견고히 합니다. 소서(小暑)와 대서(大暑)에는 서서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렇듯 여름의 절기들은 모내기와 논밭 관리, 폭염 견딤 등의 농사 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농사일의 순서와 기후 변화에 따른 대비책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앞서 읽어내며 살아가던 지혜로운 선조들의 삶의 자세가 담겨있습니다.
가을로 들어서면 수확의 계절이 찾아옵니다. 입추(立秋)에는 한가위를 대비했고, 처서(處暑)가 되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돕니다. 백로(白露)에 이슬이 많이 내리면 메밀이나 가을 봄갈이 작업에 힘썼습니다.
추분(秋分) 가을 한가운데가 되면 본격적으로 기온이 떨어집니다. 한로(寒露)에는 첫 서리가 내려 이제 완전한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립니다. 상강(相陽)에 이르면 마지막 수확이 이뤄지며 자연도 겨울 준비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가을 절기는 수확과 추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자연의 은혜로운 결실에 감사하고, 다음 봄을 대비하여 농가의 일과 생활을 정비했던 모습이 나타납니다.
겨울이 찾아오면 우리 민족은 휴식과 동시에 재생을 준비했습니다. 입동(立冬)에는 겨울의 시작을 알립니다. 소설(小雪)과 대설(大雪)에는 작고 큰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동지(冬至)가 되면 하늘의 기운이 바뀌어 봄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후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에는 찬바람이 불어옵니다. 겨울 절기에는 지나간 한 해를 반추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휴식기였습니다.
이렇듯 우리 24절기에는 자연과 긴밀히 연동되어 살아온 전통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농사를 짓고, 의식주를 해결해가며 자연 친화적인 삶을 이어가던 조상들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만의 독특한 자연관이 엿보입니다. 바로 자연을 대상화하여 정복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소통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농사를 통해 대지의 생명력을 기르고, 자연 현상을 예의주시하며 그에 맞춰 생활 방식을 정했습니다. 자연을 모시고 그 섭리를 읽어내는 겸허한 자세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자연친화적 태도는 24절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절기마다 그 계절의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있고, 자연의 섭리에 따른 일과 생활 방식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늘의 이치를 읽고 대지에 순응하며, 그 오묘한 변화에 귀 기울였던 선조들의 지혜가 24절기라는 통로를 통해 오롯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전통의 자연관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자연과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고, 자연의 오묘한 순환 원리를 겸허히 배워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24절기가 담고 있는 우리 고유의 자연관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상생과 조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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