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청명은 '하늘이 맑고 환하다'라는 뜻을 지닌 절기입니다. 겨울 내내 흐렸던 하늘의 먹구름이 걷히고 상쾌한 공기가 가득합니다. 곳곳에 꽃이 만개하며 생명력이 절정에 이르는 청명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 농경 사회에서 청명은 본격적인 봄 농사를 알리는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벌어져 봄꽃이 개화하는 시기이기도 했지요. 우리 조상들은 이 무렵 집안 화전을 가꾸고 밭과 논의 잡초를 제거했습니다. 봄 농사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갈이 작업도 청명 무렵 시작했습니다. 집 주변 잡풀도 제거하고 밭두렁을 정비하는 등 농가 대청소를 벌여 농기구와 종자 등을 꼼꼼히 챙기곤 했습니다.
이러한 농업 문화는 조상들이 청명을 맞아 풍년을 기원하며 의식을 행했던 것과도 연관이 깊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한 해의 삶이 풍년과 직결되었기에, 청명 무렵에는 각 지역마다 다양한 의식과 풍속이 생겨났습니다.
강원도에서는 손님을 환대하는 의미로 손바닥에 색색의 분물을 찍어 손바닥을 내밀었다고 합니다. 전남 구례에서는 오곡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메밀전을 부치기도 했습니다. 경상북도 청도에서는 논두렁에 벼겨를 심어두어 그해 농사 풍년을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강릉에서는 청명 무렵 '청명 풍년 기원제'라는 의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산신제를 지내고 마을의 안녕과 농사 풍작을 기원하는 전통 행사입니다. 주민들이 올해의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며 계란을 바치고 절을 하는 모습에서 농경문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청명의 봄기운을 듬뿍 받아 농사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청명에는 꽃 구경과 소풍으로 봄 정취를 만끽한 정서도 깃들어 있습니다.
고려시대 문신 이규보의 시 '오우가(五友歌)'에는 "청명 저녁에 동문 밖으로 나가니 버들 가지 쓸고 꽃잎이 날리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활짝 핀 청명의 꽃들로 가득한 봄 풍경을 읊었습니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덕무는 "청명에는 화암(花岩, 꽃바위)이나 화지(花池, 꽃연못)를 구경하고 시놀이도 즐겼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역사 기록에는 왕실의 소풍 행차가 청명무렵 자주 이뤄졌습니다. 서울 근교 궁궐과 행궁에 봄꽃이 만개하면 임금을 비롯한 궁인들이 꽃놀이를 나섰던 것입니다. 숙종 때에는 창경원의 행화원에 가서 봄꽃구경을 즐기기도 했고, 영조 때에도 봄나들이 기록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렇듯 옛 선비들에게도 꽃은 시정(詩情)을 일깨우는 중요한 소재였습니다. 꽃이 만개하는 청명은 그들에게 시적 영감을 불어넣어줬을 것입니다. 김창흡은 '봄꽃을 지나치고 지나치다'라는 시에서 "버들 넝쿨 아직 푸르스름하고 벚꽃은 활활 타오르는데…"라고 봄꽃 구경을 읊었습니다.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뜻에서도 꽃이 사용되곤 했는데, 조선 시대에는 자녀들이 청명에 따뜻한 기운을 받고자 부모님 산소에 청명화를 갖다 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예부터 자연과 벗삼아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 청명은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생명력을 기리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24절기 문화 중에서도 청명만큼 생명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절기도 없을 것입니다.
봄이 절정에 이른 청명에는 하늘과 땅이 소생의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산과 들, 공원과 길가에는 꽃들이 화려하게 만개해 있죠.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상쾌한 공기가 가득한 이 계절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세요. 봄기운 가득한 청명의 멋을 만끽하며 생명력 넘치는 대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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